
모임 회원 중에 제일 안타까운 분이 한 분 계신다. 그래서 이분에 대해 요즘 부쩍 자주 생각하게 된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미국 주식 중 성장주 위주로 분산해서 매입했다. 큰 욕심 내지 말고, 은행 이자보다 좋다는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시작하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작은 시드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분이 천천히, 안전하게 투자라는 세계에 익숙해지실 거라 믿었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국내 시장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너도나도 국내 주식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런 흐름 속에서였는지, 어느 날 계좌를 보니 국내 주식을 꽤 많이 매입해 계셨고 어느새 억대의 금액이 주식 계좌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놀란 마음에 국내 주식은 정리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본인이 알아서 하시겠다고 했다. 국내 주식이 오르자 정말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그 표정을 보면서도 나는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덜컥 겁이 났다. '이분이 지금 도박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려야 하나, 지켜봐야 하나, 그 사이에서 나도 마음이 복잡했다.
시간이 흘러 국내 주식시장이 무섭게 연일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분은 자주 전화를 걸어오셔서, 이럴 때 멘탈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셨다. 그 물음 속에 담긴 불안이 전화기 너머로도 느껴졌다. 나는 국내 주식은 멘탈 관리로 버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매도하시는 게 좋겠다는 뉘앙스로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그래도 버티겠다고 하셨는데, 얼마 전에는 많이 힘들어하시면서 "나랑 주식이랑 안 맞는 것 같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해드릴 말이 없었다. 위로도, 조언도 이미 늦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분의 심리를 나름대로 천천히 짚어봤다.
처음 주식 입문은 나에게 배워서 시작하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미디어에서 정보를 얻고 나름의 방식으로 기업을 분석하고 판단하신 것 같다. 연륜도 있으시고, 전 직장이 은행 지점장이셨던 만큼 스스로의 판단에 자신감을 가지셨던 것 같다. 물론 이분은 실제로 똑똑하신 분이다. 그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월가의 내로라하는 펀드매니저들도 하나같이 똑똑하지만, 그중에서도 투자에 실패하는 사람은 많다. 주식투자는 '똑똑함'만으로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나는 여러 번 지켜봐 왔다. 이분은 다른 분야에서는 분명 누구보다 뛰어나시지만, 금융이라는 분야는 따로 체계적으로 배우신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과 경험이 있는 분야와 전혀 새로운 분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데, 그 경계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다.
이건 심리학적으로 몇 가지 개념이 겹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1. 과신 편향 (Overconfidence Bias)
한 분야에서 쌓은 성공 경험이나 지위가, 자신의 판단력 전반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확장되는 현상이다. "나는 은행 지점장이었으니 금융을 잘 안다"는 식으로, 실제 전문성과 자기 확신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것이다.
2. 능력의 전이 착각 (Illusion of Transferable Competence)
한 영역에서의 뛰어난 능력이 다른 영역에서도 그대로 통할 거라고 믿는 착각이다. 은행 지점장의 업무 능력(대출 심사, 고객 관리, 조직 운영)과 개별 기업의 투자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은 사실 완전히 다른 역량인데,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3. 던닝-크루거 효과 (Dunning-Kruger Effect)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할수록, 역설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다. 진짜 전문가일수록 오히려 자신의 한계와 시장의 불확실성을 잘 알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지는데, 초보일수록 "이 정도면 나도 판단할 수 있다"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 세 가지가 겹치면, "나는 똑똑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았으니 주식도 잘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고, 그게 무너지는 순간 감정적으로 더 크게 흔들리게 된다. 특히 연륜과 사회적 지위가 있는 분일수록 이 착각이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즉, 성공 경험이 많을수록 "이번에도 내 판단이 맞을 것"이라는 확신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주식투자에는 완벽한 전문가란 없다. 하지만 장기투자의 개념을 제대로 모른 채 시작하면, 결국 단기투자로 흘러가거나 잘 모르는 기업에 덥석 손을 대게 되기 쉽다. 그래서 장기투자의 개념, 돈을 잘 버는 기업을 찾는 방법, 그리고 주주환원에 진심인 기업을 알아보는 눈을 기르는 연습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것들을 이분께 천천히 알려드리고 싶었고, 시간을 두고 함께 경험해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참 씁쓸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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